[DDP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展]
문화재 사들여 전통 지켰던 간송, 비디오 아트로 전통 알린 백남준… 두 사람이 한 공간서 만나
백남준 주요작과 조선 후기 명화… 공통점 있는 작품끼리 같이 전시
간송 전형필(1906~1962)과 백남준(1932~2006)은 우리 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이다. 1906년 중추원 의관 집 차남으로 태어난 간송은 빼어난 심미안으로 우리 고미술에 탐닉한 소장가다. 1932년 육의전 출신 종로 거상 백윤수가(家)의 손자로 태어난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를 개척한 예술가다. 부잣집 도련님 출신이란 점을 빼면 한 사람은 소장가로, 한 사람은 예술가로 다른 길을 걸은 듯하지만 둘 사이엔 중요한 연결 고리가 있다. 바로 우리 전통이다.
간송은 전 재산 털어 국보급 우리 문화재를 사들여 ‘전통 지킴이’ 역할을 했고, 백남준은 한국을 떠나 오랜 기간 해외에서 지냈지만 한국 정서에 기틀을 둔 작품으로 ‘전통 알림이’를 자처했다.
이 두 사람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났다. 9일 이곳에서 개막한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전(展)을 통해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작품과 백남준아트센터가 소장한 백남준 주요작이 한자리에 전시됐다.
간송이 선택한 작가는 조선 후기 화가 김명국, 심사정, 최북, 장승업 네 사람이다. 간송의 삼총사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이 없어 의외다.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은 “김명국과 최북은 조선통신사 일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일본 사람들이 그들의 그림에 한눈에 반해 동래부사 통해서 그림을 구할 정도였다. 미술계 ‘최초의 한류’인 셈이다. 현대 미술 한류의 첨병으로 꼽히는 백남준은 그냥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선배’들이 만든 긴 전통에서 태어난 인물이란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흥미로운 점은 출품작을 쭉 나열한 게 아니라 간송미술관과 백남준아트센터의 학예사들이 머리 맞대고 작품들 사이 공통점을 찾아내 고미술과 현대 미술을 ‘짝짓기’했다는 점이다.
나란히 놓인 백남준의 ‘달에 사는 토끼’와 장승업의 ‘오동폐월(梧桐吠月)’은 전시 기획 의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인조 토끼’가 TV 속 ‘인공 달’을 쳐다보는 백남준의 설치 작품, 그리고 보름달 뜬 날 오동나무 아래에서 국화꽃을 바라보는 강아지를 그린 장승업 그림이다. 기술 발전으로 달에는 절구 찧는 옥토끼가 없다는 걸 알게 됐지만 여전히 옥토끼 전설을 얘기하는 인간들의 낭만과 회화로 표현된 우리 조상의 시적 정취를 연결했다.
장승업의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와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 1번’은 ‘과시용 장식’이란 점에서 묶었다. 부귀장수를 기원하며 양반들이 집에 들여놓은 그림인 ‘기명절지도’를 서양에서 부유함의 상징으로 걸어둔 ‘샹들리에’의 전구를 TV로 바꿔버린 백남준의 기지와 연결시켰다. 백남준의 TV 로봇 작품 ‘슈베르트’ ‘율곡’ ‘찰리 채플린’ 세 점은 유불선(儒佛仙) 통합을 그린 최북의 ‘호계삼소(虎溪三笑)’와 함께 배치해, 다른 시공간에 산 인물들이 백남준의 예술에서 통합됨을 보여준다.
간송과 백남준이 ‘홈그라운드’를 떠나 시내 한복판 DDP에서 만났다는 점도 이채롭다. 간송미술관 건물인 성북동 보화각(葆華閣)이 보수 공사에 들어가면서 간송미술관은 3년째 DDP에서 기획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를 마지막으로 ‘DDP 간송전’은 막을 내린다. 용인에 있는 백남준아트
센터는 처음으로 서울 도심에서 공동 기획전을 열었다. ‘제2의 개관’을 목표로 새로운 장을 준비하는 간송미술관에도, 입지 한계를 벗어나 더 많은 관람객을 찾아나선 백남준아트센터에도 두 거목의 만남은 윈윈(win-win) 같아 보인다. 그 덕에 관람객들은 보기 드문 명작(名作)의 앙상블을 즐길 기회가 생겼다. 내년 2월 5일까지.
김미리 기자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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