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서울 성북구 성북로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했고, 1938년 완공되었다.
간송 전형필은 고려 말 학자 채미헌공 전오륜의 16대손이자,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 전영기의 장남으로 1906년 태어났다. 전영기는 현재 종로 4가인 배오개의 상권은 물론, 왕십리 등 서울 일대와 황해도 연안, 경기도 일대, 충남 공주 등지의 농지를 소유한 십만 석 부자였다. 간송은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이후, 직계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몹시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냈다. 이때 한학과 신학문을 넘나들며 서책을 모으고 책 읽기에 몰두했던 체험이 후일 대수장가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되었다. 간송은 외종사촌 월탄 박종화가 다녔던 휘문고보를 다녔는데 이때의 스승이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민족주의자였던 고희동이었다. 간송의 비범함과 웅지를 간파한 고희동은 한학의 대가이며 민족 미술의 대계를 정리한 『근역서화징』의 저자 위창 오세창에게 간송을 소개한다. 당시 최고의 감식안이었던 위창은 간송에게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간송 전형필의 극적인 문화재 수집담은 오늘날에도 회자되는데 국보 제68호로 지정된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일본인 수장가 마에다 사이이치로로부터 2만원, 당시 기와집 20채의 가격에 구입한 일화,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1940년 일제가 그토록 없애고자 했던 『훈민정음』을 먼저 발견하고 수집한 일화, 한국전쟁 때 주요 유물들을 가지고 피란했던 일화, 휴전 후 후진 양성에 힘썼던 일화들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