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은 와세다대학 법과에 무난히 합격하여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이 해에 아들을 얻는 경사가 겹치게 되었다. 간송은 와세다대학에 재학하며 식민지 백성이 당해야 하는 수모와 멸시는 그렇다 치더라도 앞길이 보이지 않는 오리무중이라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제까지는 아무리 식민지화 한 나라일망정 고국의 수도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우리 고유의 생활방식대로 살아왔고 학교도 항일정신으로 뭉쳐진 민족계열 학교만 다녀서 대일적개심을 키우며 나라를 되찾을 기회가 반드시 온다는 희망과 그것을 내 손으로 성취하겠다는 기개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 왔었는데 동경에 와 보니 그런 희망과 용기가 착각과 오산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회의와 의구심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고국에서는 서울장안 제일 갑부의 외동아들로 인물 좋고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며 음악 미술 등 예능에 뛰어난 재주를 타고난 만능의 미남 귀공자로 장안의 선망을 일신에 모았던 간송이었기에 겉으로는 겸손하나 내심으로는 자긍이 남달리 확고했던 그의 자존심은 이런 상황 자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오기는 일본을 근본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어떤 일을 해내고 싶은 야망에 불길을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