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 ‘장승업×취화선’ 전
조선 회화 전시인데 입구에 서면 어두운 터널만 보인다. 이 터널을 따라 걸어가면 영화 ‘취화선’(2002년)에 출연했던 배우 최민식과 안성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면 인조 잔디와 갈대, 거울로 가득한 전시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원 장승업(1843∼1897)의 ‘군마도’ 속 풀숲을 직접 걸어 다니는 느낌이 들도록 배치한 공간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 최후의 거장―장승업×취화선’전이 최근 화제다. 장승업의 작품 29점과 소림 조석진(17점), 심전 안중식(10점) 등 총 56점을 감상할 수 있다.
간송문화재단과 서울디자인재단이 공동 주최한 전시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 명장면을 함께 전시하는 등 대중이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힘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장승업전 직전에 열린 ‘바람을 그리다’전은 혜원 신윤복과 겸재 정선의 작품을 인스타그램에서 볼 법한 해시태그 같은 친근한 표현과 함께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그만한 발랄함은 없지만, 그림 옆에 적힌 글귀를 쉽게 읽도록 한글 설명을 첨부하고 감각적인 큐레이팅을 더했다. 현재까지 두 전시 통틀어 관객 약 5만 명이 찾았다.
장승업의 대표작인 ‘삼인문년’과 쌍폭의 ‘남극노인도’가 전시된 공간에는 조향사가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향이 풍겨온다. ‘남극노인도’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노인(남극성)에게 천진난만하게 복숭아를 바치는 동방삭을, ‘삼인문년’은 서로 나이가 많다고 자랑하는 세 신선을 그렸다. 이에 맞춰 흙냄새를 머금은 나무와 복숭아 향이 배합된 향기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으로 이어지는 현대 동양화의 출발점인 장승업의 다양한 작품을 고루 감상할 수 있는 기회. 세밀한 부분까지 확대해서 보여주는 디지털 병풍은 원작은 보존하면서, 대중적으로 작품에 접근하기 쉽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고미술을 일상적 언어로 풀어내는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의 설명도 인기라고 한다. 1만 원. 11월 30일까지.
출처 : 동아일보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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