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도기

果老倒騎: 장과 노인이 거꾸로 타다

김홍도(金弘道)
견본담채
134.6 × 56.6 cm
당나라 때 신선 장과(張果)가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면서 무슨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신선도이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이 그림 상단에 붙인 평 어(評語)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과(果)라는 늙은이 종이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손에는 한 권 책을 들었는데, 눈빛이 글줄 사이로 곧게 쏟아진다. 이는 사능(士能)에게 가장 득의작(得意作)이라 할 수 있으니 중화에서 그것을 구한다 해도 쉽게 얻을 수는 없으리라. 표암이 평한다.

果老倒跨紙驢, 手持一卷書, 目光直射行墨間. 此最爲 士能得意作, 求之中華, 亦不可易得. 豹菴評

그리고 석초(石樵) 정안복(鄭顔復)도 이런 제사(題辭)를 붙인다.

손안의 신결(神訣)은 곧 『명리정종(命理正宗: 사람의 운명을 기록해 놓은 예언서)』일터인데, 어떻게 하면 내 말년 신수를 물을 수 있을까.

手裏神訣, 乃命理正宗, 何由叩我暮境契濶. 石樵題.

위에 옮겨 적은 제사의 내용으로 보아 이 그림이 신선(神仙) 장과(張果)를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어째서 이런 형태의 표현을 하게 되었는지 더 자세
히 알기 위해서 우리는 『속신선전(續神仙傳)』의 장과전(張果傳)을 참고해야겠다. 이에 의하면 장과는 당대(唐代)에 항주(恒州) 조산(條山)에 은거하던 신선으로 태종(太宗)과 고종(高宗)이 여러 차례 불러도 나오지 않았고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억지로 불러 내오려고 하자 칙사(勅使)에게 죽어서 썩는 모양을 보이어 이를 피하였으나 다시 살아나서 현종(玄宗)의 예우(禮遇)를 받다가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서 종적을 감추었다는 인물이다.

그는 항상 흰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데 하루에도 수만리씩 다니었고 쉴때면 이것을 몇겹으로 접는데 그 두께가 종잇장과 같아서 건상(巾箱)과 같은 조그만한 상자 곽 속에 넣어두었다. 그러다가 타려고 하면 물을 뿌리는데 그러면 곧 당나귀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는 알 수가 없고 항상 백발 늙은이의 모습이었다 하는데 원래는 세상과 함께 생겨난 흰 박쥐(白蝙蝠)의 정령이 화현해서 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대강의 줄거리만으로도 단원이 과로도(果老圖)를 어째서 이와 같이 그렸는지 짐작이 가겠는데, 그림의 좌상부 제사 위에 박쥐 한 마리가 표현되고 있는 것에 이르면 단원이 신선사상에 얼마만큼 심취하고 정통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을 듯 약해 빠진 당나귀의 섬세한 표현과 난엽선(蘭葉線)에 가까운 굳센 필치의 신선의 옷 주름선이 강한 대조를 보이면서 진초록색 안장을 매개로 하여 조화를 이룬다. 거꾸로 앉은 신선의 자세가 조금도 위화감을 주지 않는 것은 책을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내용이 호암미술관 소장 〈군선도(群仙圖)〉 8폭병 중에 그려진 과로도기(果老倒騎) 장면과 너무도 흡사하여 이 그림들이 그려진 시기가 그리 멀지 않겠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간송본의 독립상이 〈군선도〉본 보다 전체적으로 훨씬 세련된 기법을 보이고 있어 〈군선도〉를 그리고 나서 그 시행착오를 극복하며 다시 그려낸 것인 듯 하다. ‘사능(士能)’이라는 관서(款書)도 같고 ‘사능(士能)’이라는 방형주문 인장도 같다. 호암의 〈군선도〉가 단원 32세 때인 영조 52년(1775)에 그려졌으니 이 그림 역시 30대 중반경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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