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원유희

群猿遊戱: 뭇 원숭이들이 장난치다

정유승(鄭維升, 1660~1738)
지본담채
29.5×47.3cm
여덟 마리 원숭이가 서로 어울려 노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제 머리를 긁기도 하고 사타구니를 벌리기도 하며, 혹은 남의 머리를 긁어대고 손가락을 다듬기도 한다. 남의 머리에 손을 뻗어 보기도 하고 제 발가락을 만지기도 하며, 둘이 어울려 하늘소를 실에 꿰어 놀리기도 한다. 원숭이의 갖가지 모습을 다양한 자세로 묘사하였는데, 네 발의 각기 다른 자세는 물론 얼굴의 표정을 저마다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취은(醉隱) 정유승은 육오당(六吾堂) 정경흠(鄭慶欽)의 아들로 현재(玄齋) 심사정의 외조부(外祖父)이다. 포도와 인물, 동물 그림에 능했고 벼슬은 현감(縣監)을 지냈다. 숙종 39년(1713) 숙종 어진을 그릴 때 감조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제사는 척재(惕齋)와 몇 달을 함께 지내다 헤어진 뒤에 그림에 옛사람의 시를 한 수 적어 보낸다고 하였다. 척재는 김만기(金萬基)의 손자인 김보택(金普澤, 1672~1717)을 말한다. 시는 이백과 두보 등과 사귀었던 성당(盛唐) 시인 고적(高適, 707~765)의 시이다. 호쾌하면서도 침통한 시를 잘 지었고, 특히 변경에서의 외로움과 전쟁과 이별의 비참함을 읊은 변새시(邊塞詩)가 뛰어나다는 고적의 「이소부가 협중으로, 왕소부가 장사로 귀양가는 것을 보내며[送李少府貶峽中王少府貶長沙]」라는 시이다.

슬프구나, 그대 헤어지는 마음이 어떠한가.
말 매어두고 잔을 들어 귀양살이를 묻네.
무협의 원숭이 우는 소리에 눈물 흐르는데
형양의 돌아가는 기러기는 무슨 소식 가져가나.
청풍강 위로 가을 하늘이 멀고
백제성 가에는 고목이 성글다.
태평성대인 지금은 은택이 많아
잠시 헤어지는데도 작별하기 주저하네.

嗟君此別意何如, 駐馬銜杯問謫居.
巫峽啼猿數行淚, 衡陽歸雁幾封書.
靑楓江上秋天遠, 白帝城邊古木疎.
聖代只今多雨露, 暫時分手莫躊躇.

장강의 이름난 협곡 삼협(三峽) 칠백 리 험한 물길 중에서도 백육십 리 무협(巫峽)은 절벽과 바위가 겹겹이 이어져 하늘을 가리고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험준한 곳으로 삼국지에서 촉(蜀)이 오(吳)를 막아낸 백제성(百帝城)이 있는 곳이다. 인적은 드물고 원숭이만 길게 울어 그 처량한 소리가 빈 고짜기에 메아리친다고 알려져 문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정유승은 장난 끼 어린 원숭이 그림에서 무협에 메아리치는 처량한 시를 생각해 내고 화제로 붙였다. 제사 끝에 ‘취은(醉隱)’과 ‘청천일광(靑天日光)’이라는 방형주문 인장이 두 개 찍혀 있다. (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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