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이도

賢已圖: 장기놀이


조영석(趙榮祏)
견본채색
31.5×43.3cm


여러 선비들이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장기를 두며 한여름 더위를 식히는 장면이다. 장기가 막판에 다다른 듯 죽은 말들이 수북이 쌓이고 판위에는 말이 몇 마리 남지 않았다. 오른쪽의 삿갓 쓴 선비가 말을 놓으며 반쯤 돌아앉은 채 일어설 태세인 것으로 보아 한 두 수면 끝나는 묘수로 장을 부른 모양이다. 외통수에 걸려 수가 없는지 낙천건을 쓴 선비는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고 그 옆의 탕건 쓴 선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감탄을 연발한다. 제비부리댕기를 드린 총각 하나가 지나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듯 돗자리 끝에 올라서서 방정맞게 부채질을 해대며 어깨 너머로 아는 체를 하고 소나무 아래 사방건을 쓴 선비는 바둑판과 쌍육판을 낀 채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이 한판의 광경을 구경하며 미소 짓는다.

소나무와 느티나무를 잘라내어 화면을 넓게 비우고 다양한 동작과 표정을 실감나게 묘사해 막판에 다다른 장기판의 흥분을 생생하게 잡아냈다. 고아하고 담백한 필선은 선비들의 아취를 전해주고 맑은 담채와 화사한 진채는 한양선비들의 도시적인 세련미를 풍겨준다. 자신을 포함한 한양 사대부들의 친근한 생활상을 그린 것이라서 조영석의 풍속화 중에서도 돋보이는 수작이다.

장기 두는 그림을 <현이도>라고 부른 것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배불리 먹고 하루 종일 마음 쓰는 데가 없으면 딱한 일이다. 바둑과 장기가 있지 아니한가?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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