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靑瓷母子猿形硯滴

12세기 중반
높이 9.9㎝
국보 제270호
고려시대에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동식물의 형태를 형상화한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원숭이 형태로 제작된 고려청자는 소수인데, 대부분 인장이나 묵호, 연적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청자들은 고려시대 귀족들이 원숭이를 애완용으로 길렀다는 사실이나 그 길상적인 의미를 고려해볼 때 문인 귀족들의 책상에 놓여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은 그 가운데 가장 조형성이 우수한 작품이다.

이 연적은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 원숭이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어미 원숭이의 머리 위에는 지름 1.0cm 정도의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 원숭이의 머리에는 지름 0.3cm의 물을 따르는 구멍이 각각 뚫려있다. 모자 원숭이의 몸체는 간략하게 표현하였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칼로 조각하여 도드라지게 하였다. 어미 원숭이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모두 조각하여 원숭이의 형상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어미 원숭이는 쪼그리고 앉아 두 팔로 새끼를 받쳐 안고, 새끼는 왼팔을 뻗어 어미의 가슴을 밀고 오른손은 어미의 얼굴에 갖다 대고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자간의 애틋한 정을 느끼게 한다. 어미 원숭이의 눈과 코, 새끼 원숭이의 눈은 철채로 까맣게 칠하여 생기를 부여하였다. 잔잔한 기포가 있는 맑은 비색의 유약을 시유하였고 바닥은 시유하지 않았다. 어미 원숭이의 엉덩이에 4개, 양 발에 1개씩의 내화토를 받쳐 구웠다.

원숭이는 고려 예종 연간 도교가 크게 유행하면서 고려청자에도 원숭이가 석류와 결합하여 장수를 상징하거나, 원숭이가 서식하는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도교의 상징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또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인 ‘후(猴)’와 제후의 ‘후(侯)’와 발음이 같은 데에서 ‘배배봉후輩輩封侯(대대로 고관대작이 된다)’ 즉, 대를 이어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바라는 길상의 의미가 덧붙여졌다. 흔히 새끼 원숭이가 어미 원숭이의 등에 업혀 있는 도상으로 나타나는데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역시 모자 원숭이가 함께 등장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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