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박산향로

白瓷博山香爐

12세기
높이 8.0cm
보물 제238호
고려시대 백자는 초기 요지인 용인 서리를 비롯해서 상감청자 전성기의 부안 유천리, 고려 말기의 서울 관악산 요지 등지에서 제작되었다. 그러나 청자만큼 제작 수량이 많지 않고 기종도 단순한 편이다. 또한 고려백자는 같은 백자이긴 하지만 조선백자보다 태토의 강도가 약하고 굽는 온도가 낮아 조선백자와는 완연히 다른 그릇이다.

이 백자향로는 둥근 사발형의 몸체와 삼족의 대좌 위에 중첩된 산모양의 뚜껑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런 향로를 일찍이 중국에서는 박산향로라 불렀다. 박산향로라는 이름은 전한대의 저작으로 알려진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최초로 보이나 책 자체가 후대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 전국시대 저술된 것으로 보는 『산해경(山海經)』 중 『오장산경(五藏山經)』에 신산(神山) 산맥으로서의 박산이 나타나고, 이후 동진(東晋, 317~418)의 장창(張敞)이 저술한 『진동궁구사(晉東宮舊事)』에 정식으로 등장한다.

박산향로는 금속제 향로도 제작되었고 도자로는 남북조 시기 월주요 청자 향로를 비롯해서 수대(隋代) 백자 박산향로를 거쳐 당대(唐代)에는 청자와 당삼채로 제작되었다. 이 <백자박산향로>는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진다. 크기는 작고 뚜껑과 몸체가 원형을 이루고 있고 세 개의 다리가 달려있다. 반구형의 뚜껑 정 중앙에 별 모양의 커다란 투공과 측면에 6개의 작은 산모양의 투공이 있어 향연(香煙)이 나오도록 하였다. 투공 주변에는 청동기 박산향로의 복잡한 장식을 단순화시킨 동일한 형태로 양각된 작은 산들을 규칙적으로 배열하여 큰 산을 이루도록 하였다. 세 개의 다리는 향로에서 많이 보이는 동물형 다리를 단순화하여 윤곽선만 드러내게 하였다. 몸체 바닥 중앙에는 굵은 모래받침 흔적이 있어 몸체는 원형의 도침을 받쳐서 구운 것으로 보인다. 완연한 청백색의 유색과 투조 형태 등이 12세기 중국 송대 경덕진(景德鎭) 백자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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