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도

二洋圖

공민왕(恭愍王, 1330~1374)
견본담채
15.7×22.0cm
고려 31대왕인 공민왕은 고려의 여러 왕들 중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 중 한 명이다. 자주적인 개혁 정치와 같은 정치적인 면도 많은 주목을 받아 왔지만,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와의 애틋하고 지극한 사랑, 비참한 최후 등 개인적인 삶도 매우 극적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와 더불어 공민왕에 대한 관심을 더욱 배가시키는 것이 바로 예술가로서의 자질과 명성이다. 그는 글씨와 그림은 물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한다. 특히 그림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불릴 만큼 빼어난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공민왕의 그림은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 <노국대장공주진(魯國大長公主眞)>, <석가출산상(釋迦出山像)>, <아방궁도(阿房宮圖)> 등 여러 작품이 문헌상으로 전해져 그 대강을 짐작할 수 있지만, 현재는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의 잔편(殘片)으로 알려진 작품과 이 <이양도> 정도 만이 공민왕 그림의 자취를 가늠하게 하는 작품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무런 배경이 없는 비단 바탕에 검은 얼룩과 갈색 얼룩을 지닌 두 마리의 양이 걸어가는 모습을 그렸는데, 작품의 크기나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아 이 역시 어떤 그림의 잔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두 마리 양의 상반된 자세를 통해 대비와 조화를 꾀한 유기적인 화면 구성과 정교한 필치는 원대 문인화가 조맹부(趙孟頫, 1524~1322)의 <이양도>를 연상시킬 만큼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조맹부가 고려 말 문예계에 미친 영향을 감안할 때, 양자 사이의 연관성을 우연의 일치로 볼 수만은 없을 듯하다.

터럭 한 올 한 올 그 질감까지 묘사된 정교한 필치가 직업적인 전문화가의 솜씨로 여겨질 정도로 능숙하다.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이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서 공민왕에 대해, “아방궁의 인물을 그렸는데, 그 크기가 파리머리만큼 작았다. 그런데도 갓 · 적삼 · 띠 · 신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 정묘하기 짝이 없었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정교한 필치가 공민왕의 장기였던 모양이다. 게다가 고매한 품격을 겸비하고 있으니, 공민왕 그림에 대한 세평을 두루 만족시키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3~1953)에 의해 장첩된 《근역화휘(槿域畵彙)》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그림이다. 오세창이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서 공민왕이 그린 <삼양도(三羊圖)>를 보았다고 하는데, 이 그림을 두고 말한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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