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서 대련

隸書對聯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지본
각 129.5×31.9cm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此爲村夫子第一樂上樂. 雖腰間斗大黃金印, 食前方丈侍妾數百, 能享有此味者幾人. 爲杏農書. 七十一果」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나물, 훌륭한 모임은 부부(夫婦)와 아들딸 손자. 이것은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 된다.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큼 큰 황금인(黃金印)을 차고, 음식이 사방 한길이나 차려지고 시첩(侍妾)이 수백 명 있다 하더라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행농(杏農, 兪致旭)을 위해 쓴다. 칠십일과(七十一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철종7년(1856) 10월 10일에 돌아가는데 이 해 8월 쯤 썼으리라 생각되는 절필 대련으로 추사체의 진면목이 함축된 대표작이다. 71세의 과천 사는 노인이라는 의미의 71과(果)라는 관서(款書)가 이를 증명해준다.

대련 내용은 명말청초의 명사인 동리(東里) 오영잠(吳榮潛, 1604~1686)의 시 「중추가연(中秋家宴)」중 ‘大烹豆腐瓜茄菜, 高會荊妻兒女孫.’을 한 짝에 한 자씩 고쳐서 완성도를 극대화시키는 점화(點化) 방식을 취하면서 평범한 일상생활이 가장 이상적인 경지임을 피력한 내용이다. 평생 학문과 예술수련에 종사하느라 가족과의 단란한 생활을 소홀히 하고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경지를 추구하여 평범한 생활을 외면하고 살았던 추사가 죽음을 앞두고 깨달은 진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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