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소답청

年少踏靑

신윤복(申潤福)
지본채색
28.2×35.6cm
조선왕조의 후기문화가 황금기를 이루고 있던 진경시대에 서울장안의 귀족생활은 아마 가장 호사를 극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귀문자제(貴門子弟)들의 행락(行樂)도 어지간히 극성스러웠을 듯한데 이 그림은 그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진달래꽃 피는 봄철이 되자 이 협기(俠氣: 남자다운 기상) 만만한 반가(班家: 양반집안)의 자제들은 청루(靑樓: 기생집)를 벗어나서 간화답청(看花踏靑: 꽃을 보고 푸르름을 밞음)의 야유(野遊)를 계획한 모양이다. 저희끼리만 가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분명히 제가 탄다고 끌어내었을 말 위에는 기생이 하나씩 올라타 있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더구나 천민인 기생이 이와 같이 무엄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미 그녀들의 포로가 되어 노예의 직임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이런 건달들에게는 예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의 옷차림은 장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온갖 멋을 다 부리고 있으니, 보라색과 옥색 천으로 발 굵게 누빈 저고리에 향낭(香囊: 향주머니, 이때는 향수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향주머니를 찼다.)을 달아 차고 홍록(紅綠)의 갖은 주머니를 긴 띠 매어 치레하며, 행전은 짧게 치고 중치막의 앞 두 폭을 뒤로 잡아매어서 뒤폭만 꼬리로 늘이어 걸음마다 나풀거리게 하고 있다.

속없는 이 사람들, 말 탄 기생에게 시중을 드느라고 담배 붙여 대령하며, 구종(驅從: 말을 모는 시종, 마부)되기 자원하여 갓 벗어 마부 주고 마부 벙거지를 제가 쓰고서 검은 띠 허벅대님 매고 말고삐를 잡고 있다. 난처한 것은 구종이다. 차마 상전의 갓을 대신 쓰지는 못하고서 고삐 대신 갓 잡고 헛채찍 맨상투에 심통이 가뜩 나서 비슥비슥 뒤만 따라간다. 한 친구는 시간에 늦었던지 갓 벗어 짊어지고 옷자락에 바람 일구며 동자구종(童子驅從)을 급히 몰아 달려오는데, 말 탄 기생의 초록 장옷도 깃발처럼 뒤로 나부낀다. 암벽에는 진달래인 듯 분홍꽃을 가득 피운 나무들이 군데군데 있고 구름 같은 기생의 트레머리에 그 꽃가지가 꽂혔으며 물빛으로 갈라놓은 삼거리 주변에는 청태점(靑苔點)이 분분(紛紛)하여 답청(踏靑)이 실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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