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금모행

夜禁冒行

신윤복(申潤福)
지본채색
28.2×35.6cm
왕조시대에 한양 도성 안은 제도적으로 야간 통행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통행금지 시간 동안에는 순라군(巡邏軍)들이 도성 안을 돌면서 위반자들을 잡아 들여서 열음기막(閱陰氣幕: 임시 구치소)에 구치하였다가 파루가 지나면 각 영문장신(營門將臣)이 집으로 끌고 가서 곤장 10대씩을 쳐 보내는 것이 상례(常例)였다고 한다. 순라군에게 불심검문을 당한 이 사람은 상당한 품계를 가진 양반인 듯하여 열음기막까지는 끌려가지 않을 신분이지만은 동행은 그렇지 못하니 적당히 양해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양반 체면에 어울리지도 않게 순라군에게 갓테를 숙여 사과하는데, 무예청 소속인지 복색도 화려한 순라군의 기세가 등등하다.

분명히 자신이 문제가 되고 있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여인은 허리에 손을 얹고 여보란 듯이 담배만 피어 댄다. 등불을 들고 앞서던 동자까지도 시시하다는 표정이니 아무래도 무엇이 조금 잘못된 모양이다. 쪽배달이 동쪽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 그믐께 밤이 깊어 새벽인 듯한데, 복장으로 미루어 보아 한 겨울인 것 같다. 여인은 누비솜바지에 솜저고리 차림이고 양반남자는 누비솜저고리에 솜바지를 입었다. 둘 다 모피로 속을 넣어 만든 털 토수(吐手)를 끼고 있어서 선인들의 방한(防寒)하던 슬기를 엿볼 수가 있는데, 남자들은 또한 방한모(防寒帽)로 풍차(風遮)를 갓 밑에 받쳐 썼던 모양이다.

순라군은 풍차도 남색과 자주색을 섞어 대어 노랑 초립과 붉은 색 덜렁에 좋은 배색을 이루는데, 무슨 옷을 그리 많이 끼워 입었는지 오색이 찬란하다. 동자가 들고 있는 양반의 풍차는 검정색에 모피를 댄 점잖은 것이어서 갓 속에 받쳐 쓴 망건(網巾)과 함께 이 사람의 신분을 잘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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