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란

石蘭: 돌과 난

김응원(金應元,1855~1921)
견본수묵
200.0×82.2cm
난 그림은 옆으로 벋어가는 난잎의 생태상 세로가 긴 종폭의 화면의 경우 화면구성이나 구도를 잡기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따라서 종폭의 화면에 그릴 경우는 바위나 절벽을 배경으로 난을 무더기로 그려 넣는 군란도(群蘭圖)나 총란도(叢蘭圖) 형식이 매우 유용합니다. 이러한 군란도나 총란도는 중국에서는 청대 이후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청조문화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는 조선말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석파 이하응의 몇몇 총란도 형식의 묵란화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석란>에서도 이하응의 자취가 비쳐집니다. 이런 까닭에 김응원이 이하응의 하인이었다는 설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화면 좌우로 현애(懸崖)와 바위를 배치하고 그 바위틈에서 돋아난 무더기 난을 촘촘하게 그려 넣었습니다. 바위의 기세와 향배의 구성도 적절하고, 난 무더기의 취산(聚散), 소밀(疏密), 다소(多少)의 대비와 조화도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군자의 고고한 기상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하지만, 심산유곡의 그윽한 정취를 담아낸 총란도의 장처를 잘 살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늘고 길게 뽑다가 반전(反轉)하여 사마귀 배 모양으로 불룩해지다, 다시 쥐 꼬리처럼 가늘게 마무리한 난잎의 묘사도 이하응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조선의 회화 중에는 보기 드문 압도적인 화면의 크기나 전체적인 형식, 구성 등에서 청대 총란도의 영향이 묻어나, 전통화풍과 외래화풍의 혼재를 보여줍니다. 필치가 가볍고 기교가 다소 과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근대기 최고의 묵란화가라는 예칭(譽稱)에 걸맞는 득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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