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원투도

閬苑偸桃: 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

김홍도(金弘道)
지본담채
102.1 × 49.8 cm
단원 김홍도는 보통 도석화(道釋畵)로 분류하는 신선도(神仙圖)와 선승도(禪僧圖)를 특히 많이 그리고 잘 그려서 우리 회화사상 도석화의 제일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일찍이 신선사상에 심취해서 『신선전(神仙傳)』, 『열선전(列仙傳)』, 『한무내전(漢武內傳)』 등의 책을 탐독했었다.

그리고 46세시(1790)에 용주사(龍珠寺) 후불탱화를 제작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고부터는 불교에 깊이 귀의하였다. 그래서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역대의 수많은 신선과 생사를 초월한 불보살을 비롯한 고승대덕의 상호를 인물 풍속화로 다져진 능숙한 사생적 필치로 수없이 많이 그려냈다.

이 〈낭원투도(閬苑偸桃)〉는 그런 도석화 중 백미(白眉)로 꼽히는 그림이다. 3천갑자(甲子, 1갑자는 60년이니 18만년)를 산다는 동방삭(東方朔)이란 신선이 중국 서쪽 곤륜산(崑崙山) 중에 있다는 여선(女仙) 서왕모(西王母)의 선도(仙桃) 복숭아 과수원인 낭원(閬苑)에서 그 선도복숭아를 훔쳐 오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곳 낭원의 선도복숭아는 3천년만에 한번 꽃이 피고 다시 3천년이 지나야 익는다고 하는데 이 복숭아 한개를 먹으면 1천갑자를 산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재주꾼들이 이 복숭아를 훔쳐 먹고 불로장생하려 하지만 서왕모의 경계가 워낙 삼엄하여 그 뜻을 이룬 이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동방삭 만은 세 번씩이나 이 낭원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서 3천 갑자를 살게 됐다고 한다. 그 내용은 『한무내전』에 실려 있는데 그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어느 때인가 서왕모가 한무제에게 낭원의 선도복숭아를 대접하기 위해 이를 가지고 무제의 궁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막 복숭아를 먹으려 하는데 남창(南窓) 밖에서 훔쳐보는 인기척이 있다. 무제가 놀라서 누구냐고 물으니, 서왕모가 말하기를 ‘이는 내 이웃에 사는 어린애 동방삭인데, 성품이 장난질을 좋아해서 벌써 세 번씩이나 복숭아를 도적질해 갔답니다. 이놈은 본래 태상(太上)의 선관(仙官)이었으나 다만 놀기만 좋아해서 태상께서 귀양보내 인간 세상에 있게 했지요.’라고 한다.

이 내용에서 단원은 소재를 얻었을 터인데 동방삭의 얼굴을 우리 주변의 평범한 얼굴로 묘사해 놓고 있다. 이마가 한정 없이 길어진 기괴한 모습의 중국풍 신선의 기형적 모습을 실존하는 우리 주변 인물의 평범한 모습으로 환원시켜 놓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경시대를 살며 진경문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던 우리 선조들의 당당한 문화적 자부심의 표출이었다. 우리가 세계 문화의 주역이니 우리 모습이 바로 모든 세상 사람의 기준이라는 신념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말뚝처럼 굵은 궐두선(橛頭線)을 질펀하게 쓴 대담한 감필법(減筆法: 사실적 표현을 극도로 생략하여 추상적으로 함축하는 필법)으로 옷 주름을 처리하여 동방삭의 호방한 성격을 드러냈는데 바람이 뒤에서 불어 옷자락이 모두 앞으로 날리고 있다. 체취를 뒤로 실어 보내지 않게 하려는 도둑의 심사를 간파한 의도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워낙 귀한 선도복숭아인지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떠받들고 살금살금 걸어가는 모습이다. ‘만래권농역일관(晩來勸農亦一官: 만년에 와서 권농을 하니 또한 하나의 벼슬이다)’라는 방형주문(方形朱文) 인장이 찍히고 ‘기우유자(騎牛游子: 소를 타고 노니는 사람)’이라는 유인(游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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