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란

墨蘭

이인상(李麟祥, 1710~1760)
지본수묵
27.4×21.0cm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문인화가 중 한 명인 능호관(凌壺觀) 이인상이 그린 묵란화이다. 그는 고고(孤高) 표일(飄逸)한 일격(逸格)의 문인화풍으로 현재 심사정, 표암 강세황과 더불어 영조년간(英祖年間, 1724~1776) 후반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당연히 문인화의 핵심적인 분야라 할 수 있는 사군자 그림에도 적지 않은 관심과 기량을 가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의외로 현재 전해지는 그의 작품 중 사군자 계통의 그림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가운데 편화(片畵) 형태로 전해지는 이 작은 묵란 한 폭은 이인상 회화의 지평을 넓혀주는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한 포기의 난을 그렸는데, 일체의 배경을 생략하고 화면 한 가운데에 난 한 포기만을 배치하였다. 화면 한쪽에서 대각선 형태로 난엽을 쳐가는 일반적인 묵란화의 형식과는 다른 독특한 구도이다. 이로 인해 마치 어떤 그림의 부분도처럼 보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도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특이함은 상투적인 것을 극히 싫어하는 작가의 기질과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보아야 하겠다.

구도 뿐만 아니라 난엽과 난꽃의 필치와 묘사도 다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직선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유연한 난엽이 너울거리듯 펼쳐있다. 그러나 담백하면서도 탄력있는 필치로 인해 전체화면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다섯 개의 꽃잎과 두 개의 꽃술로 이루어진 난꽃의 기본적인 양태는 화보(畵譜) 등에서 쉽게 찾아지는 형식이다. 그러나 주춤거리며 조심스럽게 운필한 필치는 언뜻 미숙하게 보이지만 골기(骨氣)를 잃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유연함이 강조된 난엽과 대비를 이루어 전체 화면에 변화 있는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오랜 수련을 거친 숙련된 필치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표현들이다. 졸박한 듯하지만 지극히 세련된 이인상 회화의 특장이 이 묵란화에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이인상인(李麟祥印)’의 인문(印文)을 가진 백문방형(白文方形)의 인장이 우하단에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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