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청강

舟遊淸江

신윤복(申潤福)
지본채색
28.2×35.6cm
왕도(王都)의 빈빈(彬彬: 문물이 성대하여 빛남)한 문물은 여유 있는 귀족생활의 격조 높은 운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녹음이 우거지고 강심(江心: 강의 중심)에 훈풍(薰風: 첫여름에 부는 산들바람)이 일어나자 두세 자제(子弟)들이 한강에 놀잇배를 띄우고 여가를 즐기는 것 같다. 호사를 금기로 여기던 조선왕조의 귀족들이니 호화선을 꾸밀 리 없고 다만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차일(遮日)을 드리우고 풍류를 아는 기생들과 젓대잡이 총각하나를 태웠을 뿐이다.

신록이 그늘진 절벽 밑을 감돌아 나가는 뱃전에서는 시원한 생황(笙篁)소리와 맑고 긴 젓대소리가 섯바뀌어 일어나서 강심(江心)으로 휘돌아나가고, 일렁이는 잔물결은 뱃전을 두드리니 여기서 시정(詩情)이 흐르고 사랑이 무르익는다. 뱃전에 엎디어 스치는 물살에 손을 담가 보는 여인이나 이를 정겹게 턱을 고이고 지켜보는 선비의 모습에서도 그렇거니와 어깨를 감싸고 담뱃대를 물려주는 한 쌍의 남녀에게서는 시샘이 날 만큼 농밀한 사랑이 엿보인다. 이런 중에서도 남의 일에는 아랑곳없이 망연(茫然)히 뒷짐지고 시상(詩想)에 잠기는 여유를 보이는 것은 역시 왕조귀족의 몸에 밴 교양이라 할 수 있다. 삿대질에 열심인 뱃사공도 자기 일에만 충실하고 있어서 음악을 연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과 함께 질서 있는 조화를 이룩한다.

이렇게 시정을 담은 뱃놀이가 굽이굽이 강상(江上)을 누비며 청아한 음률(音律)을 뿌려도 무심한 백구(白鷗)만 물결 쫓아 날아들 뿐 유유(悠悠)한 장강(長江)은 말없이 흘러간다. “젓대소리 늦바람으로 들을 수 없고, 백구만 물결 좇아 날아든다.(一笛晩風聽不得, 白鷗飛下浪花前)”라는 구절이 화외(畵外)의 소식(消息)을 화제(畵題)로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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