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설만산

積雪滿山, 쌓인 눈 산 덮다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지본수묵
22.9×27.0cm
보물 제1983호 《난맹첩(蘭盟帖)》
이 묵란도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30여 년 동안 난치는 법을 배우고 익힌 끝에 터득해 낸 추사 난법(蘭法)의 요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추사는 그 난치는 비결을 체득한 다음 《난맹첩》 상 ・ 하 2권에 각각 10폭과 6폭씩 자신의 난치는 법으로 그려낸 대표작을 장첩(裝帖)했습니다. 이 <적설만산>은 《난맹첩》 상권 첫폭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짧고 촘촘한 잎들이 보통의 길고 유연한 잎들과는 사뭇 달라 이채롭게 보입니다. 아마 자생란의 북방한계선인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춘란의 강인한 기상을 표출하기 위해 이렇게 묘사한 모양입니다. 붓을 급히 눌러 나가다가 짧게 뽑는 필치로 일관하여 언뜻 보면 억센 잔디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기상이고 고유한 미감이 발현된 굳세고 명확한 표현입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한서(寒暑)의 차이가 극심하며 바위산이 많은 우리 기후풍토에서 비롯된 감각적 특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후에 엷은 담묵으로 꽃을 그렸는데 그것도 꽃대가 짧고 꽃잎은 매우 단조롭습니다. 눈보라에 시달리며 한 겨울을 얼어 지내고 나서 봄바람을 만나 몽그라진 잎새 위로 겨우 꽃대를 내밀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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