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

癸未銘金銅三尊佛立像

563년
높이 17.7cm
국보 제72호
6세기 초반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호신불로 유행하던 금동삼존불상이다. 연꽃잎 모양의 광배 중심에 주불입상이 원형 두광(頭光)과 타원형 신광(身光)을 짊어지고 서 있고 그 좌우에 보살입상이 연꽃 봉오리 같은 지물을 들고 서 있다. 두원광 안에는 당초(唐草)라 부르는 넝쿨 장식과 동심원 장식이 중복되고 상부에는 횃불모양이 높게 돋을새김 되어있다. 신광도 타원형 융기선이 중복되면서 그 사이에 연꽃 봉오리가 선각으로 새겨졌다. 그 밖으로 광배 전면에 불꽃 모양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위로 겹겹이 돌아 오른다.

주불은 머리칼 표현이 없는 큰 육계를 달고 있어 마치 절풍건(折風巾)을 쓴 것 같은 모습이고 의복은 포복식불의(袍服式佛衣)로 양끝 아랫자락이 날개깃처럼 펼쳐져있다. 시무외 여원인(施無畏 與願印)을 지은 두 손 중 왼손의 여원인은 새끼손가락과 무명지를 구부리는 시대양식을 보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연가7년(539)명금동불입상>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도 이 어름에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하는데 광배 뒷면에 이런 명문이 새겨져 있어 그 조성연대의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계미 11월 정일 보화가 돌아간 아버지 조귀인을 위해 만들다.(癸未十一月丁日寶華爲亡父趙貴人造.)’

이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은 연화좌대에서 연꽃잎을 3중으로 포개고 맨 위 꽃잎을 양면으로 나누는 장식성을 보이고 있어, 소박한 단판 연화대좌의 <연가7년명금동불입상>보다 뒤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이 만들어진 계미년은 563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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