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문화전 3부

진경산수화 – 우리 강산 우리 그림


전시명 간송문화전 3부 : 진경산수화 – 우리 강산 우리 그림

기간 2014년 12월 14일 ~ 2015년 5월 10일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

주제 진경산수화 – 우리 강산 우리 그림

주요작품 < 정선 > 청풍계, 광진, 도산서원, 금강내산 등
< 심사정 > 삼일포, 만폭동 등
< 김홍도 > 명경대, 구룡연, 옥순봉 등
총 90여 작품

주최 간송미술문화재단, 서울디자인재단, SBS

주관 간송C&D

협찬 현대해상

미디어후원 네이버

진경(眞景)산수화는 우리 국토 안에 있는 ‘진짜 경치(眞景)’를 소재로 이를 사생해 낸 그림이다. 이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에 의해 토대가 마련된 조선성리학이라는 고유 이념을 바탕으로 움터오는 조국애와 국토애의 발현 현상이었다. 당연히 율곡학파가 주도하고 퇴계학파가 동조하여 성공시키는 인조반정(1623) 이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경산수화의 서막이 열리는데 29세에 반정에 참여했던 창강(滄江) 조속(趙涑, 1595~1668)에 의해서였다. 그는 반정 후에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시화로 이를 사생하는 작업에 몰두하여 진경산수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금강산도 그리고 오대산도 그렸다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진경산수화는 물론 그 뒤를 이어 금강산을 많이 그렸다는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진경산수화도 기록만 보일 뿐 실물이 전하지 않는다.

이후 이들의 전통을 이어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하고 이를 완성하여 진경시대 문화의 핵심으로 떠오른 인물이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었다. 겸재는 『주역(周易)』에 밝은 사대부 화가로 진경산수화법 창안에 『주역』의 음양조화(陰陽調和)와 음양대비(陰陽對比) 원리를 이끌어 화면 구성을 했다. 중국 남방화법의 기본인 묵법(墨法)으로 음(陰)인 흙산을 표현하고 북방화법의 기본인 필법(筆法)으로 양(陽)인 바위산을 표현하는 참신한 방법이었다.

이번 진경산수화전은 겸재 59세경의 작품인 〈성류굴(聖留窟)〉부터 시작하여 84세로 돌아가기 직전에 그렸다고 생각되는 〈금강대(金剛臺)〉까지 출품되는데 우리 국토 안에서 명승지로 꼽히는 관동팔경과 단양팔경, 서울 주변의 경교명승, 박연폭포 등이 모두 그 안에 포함된다. 연대별로 유의해 관람하면 겸재 진경산수화법의 변화과정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겸재의 진경산수화법 창안은 획기적인 문화혁명이었으니 이로부터 다음 세대인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 능호관(凌壺館) 이인상(李麟祥, 1710~1760),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 1711~1775), 단릉(丹陵) 이윤영(李胤永, 1714~1759) 등 사대부화가는 겸재의 영향으로 진경산수화를 각자의 기법으로 따라 그렸다.

진경시대 말기에 이르면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고송유수관(古松流水館) 이인문(李寅文, 1745~1824),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 초원(蕉園) 김석신(金碩臣, 1758~?) 등 화원화가들이 배출되어 겸재의 진경정신을 계승하면서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한다. 특히 김홍도는 정조의 왕명을 받들고 강원도 영동 9군의 명승을 사생해 돌아오는데 세련된 필법으로 섬세하고 충실하게 묘사하여 겸재와는 또 다른 흥취를 자아낸다. 모두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다. 이후 진경문화가 부정당하기 시작하는 북학시대에 진경산수화가 어떻게 잔영(殘影)을 끌어가는지를 살피기 위해 기야(箕野) 이방운(李昉運, 1761~?), 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 1764~?), 이호(梨湖) 김기서(金箕書, 1766~1822), 임전(琳田) 조정규(趙廷奎, 1791~?), 소치(小癡) 허유(許維, 1809~1892) 등의 진경산수화도 함께 내놓았다. 이미 진경정신을 상실한 진경산수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후 국망기에 활동하는 춘방(春舫) 김영(金瑛, 1837~?),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晋, 1853~1920),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으로부터 그 제자 세대로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까지 활동하던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7),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 1897~1940),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 1899~1978) 등의 진경산수화도 함께 출품한다. 비교 감상하면 진경문화의 실체와 그 시대 진경산수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고유 이념을 갖는다는 것이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는데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 짐작케 하는 전시회가 되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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