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약영일

魚躍迎日: 물고기가 뛰어 해를 맞이하다

심사정(沈師正, 1707~1769)
지본담채
129.0×57.6cm
수평선 너머로 이제 막 해가 떠올랐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펼쳐진 수면은 요동치며 꿈틀대는데, 잘생긴 잉어 한 마리가 몸을 솟구쳐 해를 맞이하고 있다. 화면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잉어는 전체화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로 인해 이 그림이 바닷가의 일출을 묘사한 예사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면 위를 뛰어오르는 잉어의 모습은 등용문(登龍門)의 고사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고사는 황하의 지류 중에 3단 폭포가 있는 곳을 용문(龍門)이라 하고 이곳을 뛰어오른 잉어는 용이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내용이다. 과거(科擧)에 급제하거나 승차(陞差)하기를 바라는 축원을 담아내기 적합한 소재였으니, 이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빈번하게 그려졌다. 약리도(躍鯉圖),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 등으로 불리는 그림들이 그것으로, 『고씨화보(顧氏畵譜)』에도 같은 내용의 그림이 전재되어 있다.

심사정의 그림 상당수가 그렇듯이, 이 <어약영일>도 화보(畵譜)를 모본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개략적인 형식만 참고했을 뿐, 구도나 세부묘사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그 배경을 완연한 바닷가 일출의 장관으로 묘사한 것은 심사정의 탁월한 착상에서 나왔다.

그러나 잉어가 민물고기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면 이 구성은 아무래도 불합리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엎을 듯한 격랑과 기세 충만한 붉은 해는 약동하는 잉어와 호응하며 기막히게 잘 어울리고 있다. 걸작은 기발한 착상만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착상을 화면에서 옮겨낼 수 있는 화기(畵技)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도 이 그림은 부족함이 없다. 수염 하나 비늘 하나까지 세밀하게 그려낸 사실적인 잉어, 길고 짧은 필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역동성을 잘 살려낸 파도, 적재적소에 베풀어진 능숙한 선염(渲染)에서 심사정의 원숙한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또한 화면 하단부터 점차 폭을 줄여가면서 상중하 3단으로 화면을 분할하였는데, 용문의 잉어가 뛰어 넘어야 할 3단계의 폭포를 암시하는 동시에 드넓은 수면과 반복적인 형태의 파도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단조로움을 보완하는 이중의 효과를 내고 있다. 이 역시 탁월한 감각이다.

화면 상단의 ‘정해(丁亥, 1767)년 2월 삼현(三玄)을 위해 장난삼아 그리다.(丁亥春仲爲三玄戱作)’라고 썼다. 아마도 후배 등과(登科)를 위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삼현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공들인 필치로 보아 심사정이 퍽 아끼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조선남종화의 정립자로 조선후기 회화사의 한 축을 차지하는 심사정이 환갑 되던 해에 절정의 솜씨로 정성을 다해 그린 작품으로 심사정의 어해화(魚蟹畵) 중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힐만한 작품이다. (白)

error: Alert: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