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오리형연적

靑瓷鴨形硯滴

12세기
높이 8.1cm
국보 제74호
오리의 모습을 형상화한 연적은 여러 점이 전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풍을 보이는 것이 이 <청자오리형연적>이다. 이 작품은 고려 상형청자 제작 기술이 절정일 때 제작되었다. 오리는 꼬인 연꽃 줄기를 입에 물고 있으며 균형 잡힌 통통한 몸매이고 두 발은 몸통 밑으로 감추었다. 오리의 등에는 연잎과 연봉오리가 얹혔는데 연잎 부분에 물을 넣을 수 있는 입구를 만들고 연봉오리로 뚜껑을 만들어 실용성과 심미성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물을 따르는 출수구는 오리 주둥이의 오른편에 붙어 있지만, 현재는 손상되어 원형을 확실히 알 수 없다. 깃털 등 세부까지 소홀함이 없이 매우 섬세하고 사실감 있게 묘사하였다.

유색은 맑은 비색으로 전면 시유하였는데, 유약이 고인 부분은 더욱 푸르게 보여 미감을 증가시키고 있다. 바닥에는 번조시에 사용된 규석받침이 네 개 발견된다. 이 작품과 같은 청자오리형연적이 출토된 가마터는 강진 용운리, 부안 유천리 등이 있으며 이들 유적에서 발견된 편들을 통해 오리형연적 제작 방법을 알 수 있다. 흙으로 오리를 빚고 태토가 반쯤 건조되었을 때 오리 몸체를 가로로 길게 절단한 뒤 속을 파내었다. 그 뒤 두 부분을 다시 정교하게 접합하여 세부묘사를 하여 마무리하였다.

오리가 미술품의 주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으로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 세형동검의 손잡이 장식을 거쳐 삼국과 통일신라시대 부장용 토기에서 오리를 형상화한 뚜껑이나 그릇이 발견되었다. 이때의 오리는 장식적 혹은 주술적 상징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 청자연적처럼 고귀함과 군자를 상징하는 연꽃과 가내평안과 부부화합의 길상적 의미를 지닌 오리가 만나 문인을 상징하는 연적으로 제작되면서, 문인 그 자체나 문인들의 소망인 장원급제를 포괄적으로 상징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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