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일한묘

秋日閑猫: 가을날 한가로운 고양이

정선(鄭敾, 1676~1759)
견본채색
30.5×20.8cm
겸재 그림으로는 희귀한 8폭 영모화 중의 한 폭이다. 가을 볕이 따사로운 어느 날, 한 그루 연보라빛 겹국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는 뜨락에 금빛 눈의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멋모르고 날아 내려앉은 방아깨비의 동작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가을 방아깨비 답게 진보랏빛 배통이 날개 아래로 보이고, 고양이를 의식한 듯 더듬이를 날카롭게 세우면서 언제라도 다시 날아갈 수 있는 준비 태세를 갖춘 순간 동작이 정확하게 포착되어 있다. 금빛 눈에 초점을 좁게 모으고 가당찮은 미물의 당돌한 내침(來侵:쳐들어옴)에 장난기를 발동하려는 듯 호기심 어린 눈매로 예의 주시하고 있는 하얀 배털을 가진 귀티 나는 고양이의 동작도 여지없이 간파되고 있다. 겸재의 세심한 관찰력과 실사(實寫: 실물 그대로 그려냄)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낸 작품이라 하겠다.

굵고 거친 대담한 필묘와 먹물이 줄줄 흐를 듯 임리(淋漓:흥건하게 배어듦)한 묵법을 호탕하게 구사하는 겸재가 어떻게 꽃잎과 고양이 터럭 하나는 고사하고, 벌과 방아깨비 다리에 난 잔터럭까지 세밀하게 묘사해 낼 수 있었는지 얼른 상상이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주경임리(遒勁淋漓:선은 굳세고 먹은 흥건하게 배어 듦)한 진경산수 속에 작게 표현되는 인마(人馬)의 경우, 확대경으로 비춰 보면 어느 그림에서나 적확(的確)한 묘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이런 세밀한 표현법이 겸재가 바탕에 깔고 있었던 기량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겸재의 장쾌한 운필은 이러한 세밀화법의 숙달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 질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꽃잎의 줄기와 터럭 하나의 묘사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것에 반하여 국화의 줄기와 잎은 몰골묘(沒骨描: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수묵이나 채색으로 직접 대상을 그려내는 묘사법)로 신속하게 처리했고, 고양이의 몸도 윤곽부분 이외에는 모두 흑백의 도색으로(塗色:색칠)으로 일관하여 조밀(粗密:거친 것과 세밀함)의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 모두가 겸재다운 화면구성의 묘리라 할 수 있겠다.

고양이 등 뒤로 천연하게 벋어나간 한 줄기 강아지풀이나 방아깨비 뒤에 난 방동사니의 정확한 표현은 겸재의 주변 관찰이 얼마나 정세했던 가를 새삼 확인시켜 주는 것이며, 흔한 잡초라도 겸재의 손 끝에 오르면 훌륭한 회화의 소재가 되었던 사실을 실감나게 한다. (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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