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상감모란문합

粉靑沙器象嵌牡丹文盒

15세기
높이 15cm
보물 348호
조선 15세기에 크게 유행한 분청사기는 관사는 물론 대전(大殿)에서도 사용하였고 전국적인 생산지를 가지고 있어 왕실 이외에도 전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러한 분청사기는 문양과 기형 등에서 몇 가지의 양식을 갖고 있다. 고려시대 청자를 계승한 전통적 양식을 지닌 것이 있는가하면 중국 도자 양식의 유입을 연상시키는 중국 도자의 것을 모방한 새로운 기형과 문양도 있으며, 분청사기만의 고유한 기형과 문양을 지닌 것도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조선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역시 세 번째 양식들이다.

<분청사기상감모란문합>은 뚜껑이 몸체를 뒤덮는 형식의 합으로 고려청자의 양식을 계승한 것도 아니요, 명 도자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닌 바로 조선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대범한 문양, 거친 질감, 자유로운 구도와 배치, 흙냄새 질펀한 유색 등이 그것이다. 먼저 뚜껑을 보면 중앙에 커다란 왕모란이 간략하게 면상감되어 있다. 모란의 당초줄기는 절삭된 측면부로 내려와 꽃과 이어지면서 백상감으로 조각되었다. 꽃잎과 가지 역시 굵게 표현되었는데 이러한 대범하고 거친 표현의 모란문은 동시기 여러 분청사기에도 나타난다. 단이 진 뚜껑 테두리에는 종속문대로 초화문이 상감되어 합의 몸체 구연부의 초화문 종속문대와 쌍을 이룬다. 뚜껑 안쪽에는 내화토 받침 5개를 사용하여 번조한 흔적이 보인다. 합의 몸체에는 상하 종속문대 안에 뚜껑과 같은 모란당초문이 상감되었다. 주제문양인 커다란 모란문은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단순과 생략을 통해 새로운 미감을 보여준다. 모란문은 연화문과 더불어 15세기 분청사기 문양의 주류를 이루었다.

밖으로 벌어진 굽은 별도로 제작하여 접합한 것으로 내화토 받침 흔적이 보이지만 잘 닦여져 분명치 않다. 몸체 내면에는 일부 흙물이 튄 채로 그대로 번조되어 거친 질감과 유색이 마치 흙물 같은 자연스러움을 더해준다. 이러한 합은 아마도 제례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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