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白磁靑畵鐵彩銅彩草蟲蘭菊文甁

18세기
높이 42.3㎝
국보 제294호
조선 초기부터 중국의 화려한 청화백자나 알록달록한 오채 그릇이 유입되어 중외에 파다하게 퍼졌지만, 절검(節儉)을 중시했던 조선의 왕실과 사대부들은 약간의 장식이 있는 소박한 느낌의 백자 사용의 전통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경시대(숙종~정조) 들어 수요층의 기호가 변화하면서 조선백자에도 절제된 화려함이 시도되었다. 백자에 두 가지 이상의 안료를 사용하여 장식한다든가 문양을 양각이나 투각으로 조각하고 그 위에 채색을 가하여 한껏 멋을 낸 것들이었다.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하는 수작이다. 목이 길고 몸체가 달항아리처럼 둥그런 유백색의 병으로 산화코발트, 산화철, 산화동 등을 모두 안료로 사용하여 청색, 갈색, 홍색으로 장식하였다. 먼저 푸른색을 내는 청화는 산화코발트가 주원료로 중국에서 수입하여야만 사용이 가능했다. 청화의 색상은 온도에 민감해서 밝은 청색에서 검정색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적당한 발색 온도를 찾기 위해서는 오랜 연구와 실험이 절대적이다. 다음 국내산인 철화백자에 사용되는 산화철 역시 번조온도 및 번조시간, 번조 분위기에 의해 그 색상이 크게 달라진다. 17세기 이후 등장한 붉은 색조의 동화는 산화동이나 탄산동이 주원료로 실제 사용할 때는 보조제와의 혼합과 유약의 두께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처럼 이 세 가지의 안료는 모두 성질이 달라 소성 온도와 가마 분위기에 따라 발색이 좌우되어 제작에 있어 상당한 기술이 요구된다. 이런 복잡하고 고난도의 소성 과정 때문에 이 작품처럼 제대로 구현된 작품은 극히 일부로 명품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자의 주제 문양인 초충도는 겸재 정선의 초충팔폭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전체 구도는 둥그런 병의 몸통에 우측으로 비스듬히 올라간 국화문과 좌측으로 가느다랗게 뻗은 세 줄기 난초가 주를 이룬다. 양각으로 처리한 국화는 동화로 채색되었으며, 국화 줄기와 잎은 철화로 장식되었다. 난초는 청화로 장식되었는데, 그 발색 또한 상당히 선명하다. 공간을 구획하는 선이나 종속 문양대가 없으며 대형의 병임에도 목 위로는 문양이 시문되지 않아 번잡하지 않다. 국화의 좌측 상단에 동화로 채색된 곤충은 여백을 메워 잘 짜여진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초충문은 그 의미상으로 볼 때 길상문의 일부에 속하고 채색에 있어 화려하고 장식적인 것이 특징이다. 또한, 전체 화면 구성상 생명이 짧은 곤충이나 일년생 국화가 주문양을 차지한 것은 자손 번영과 영원한 생명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유백색(乳白色) 유약이 전면에 시유되어 단정한 느낌을 주며 굽다리에 내화토를 받쳐 구운 흔적이 발견되었다. 1936년, 간송 선생이 경성구락부 경매에서 일본인 골동상과 수장가들을 제치고 지켜낸 조선후기 도자를 대표하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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