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狎鷗亭

정선(鄭敾)
견본채색
20.0×31.5cm
보물 제1950호 (경교명승첩)
지금 현대아파트, 한양아파트 등 고층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의 본 모습이다. 잠실 쪽에서 서북으로 흘러오던 한강 줄기가 꺾어져 서남으로 흘러가는데 그 물모룽이를 이루는 언덕 위에 높이 세워진 것이 압구정이다. 압구정에 올라서면 한양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명산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이 그림에서도 압구정동 일대와 강 건너 옥수동, 금호동 일대가 한눈에 다 보인다. 그 뒤로 보이는 짙은 초록빛 산은 남산이고, 멀리로는 삼각산 연봉들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압구정 뒤로 보이는 원산은 청계산과 우면산일 것이다. 경치가 이토록 빼어난 곳이니 역대 권문세가들이 항상 이곳을 탐내어 별장을 짓고자 했다.

압구정을 처음 지은 사람은 한명회(韓明澮)였다. 그는 수양대군의 심복이 되어 간교한 꾀로 김종서와 안평대군 등 조정대신과 왕자들을 죽이고 수양대군으로 하여금 어린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게 한 장본인이다. 세조와 성종대를 거치며 최고의 권신으로 세상을 농락하던 한명회는 만년에 이곳에 별장을 짓고 명나라 문인 예겸에게 압구정, 즉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는 정자’라는 뜻의 이름을 받았다. 이 그림에서도 제법 규모가 큰 정자가 언덕 위에 덩그렇게 지어져 있는데, 이 그림이 그려지던 때는 누가 압구정의 주인이었던지 확실치 않다. 압구정이 서있는 높은 언덕아래 층층이 이어진 강변구릉 위로는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마을을 이루듯 들어서 있다. 이중에는 당시 서울 대가집들의 별장이 상당수 섞여있을 것이다.

싱그러운 초여름 어느 맑은 날에 그린 듯, 산과 나무가 온통 청록빛으로 물들어 있다. 맑고 상쾌한 초여름 강변의 계절감을 화사한 색채와 담백한 필치로 잘 묘사했다. 대담한 구도와 굳센 필치로 활달한 기상을 드러내던 겸재의 금강산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겸재가 65세 무렵에 그린 그림으로 겸재의 다양한 화풍을 엿볼 수 있다. 화면 우측 상단에는 ‘천금물전’ 즉, ‘천금을 주더라도 남에게 주지 말라’는 내용의 도장이 찍혀 있다. 겸재가 찍은 것인지, 아니면 후대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이 찍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그림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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