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bs.co.kr/news/view.do?ncd=4157137&ref=A [앵커] 일제시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지켜온 우리 문화재의 가치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겁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이런 유물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는데요. 김민혁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 유려하게 흐르는 곡선이 최고의 명품 청자다운 멋을 뽐냅니다. 일본인에게 넘어갔던 것을 간송 전형필 선생이 기와집 20채 값을 주고 되찾아왔습니다.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품은 모습을 형상화한 청자 연적. 10cm 남짓한 작은 크기에 이목구비의 표현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간송이 직접 일본까지 건너가 서양인 수집가를 설득해 되찾아온 유물입니다. [이예인/서울시 관악구 : "전형필 선생만이 할 수 있었던 방법의 독립운동이었던 것 같아서 그런점에서도 뭔가 특별하다..."] 간송은 이렇게 사모은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1938년 보물을 지키는 집이란 뜻의 '보화각'을 설립합니다.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 현재의 '간송미술관'입니다. 해마다 봄, 가을 두 차례만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전시 때마다 관람객들이 몰려 수백 미터씩 줄을 섰습니다. [전인건/간송미술관 관장…
얼마 전 삼일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간송 전형필 전시회(동대문디자인 플라자)를 다녀왔다. 간송이란 산골짝의 맑은 물과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뜻한다. 간송은 나이 스물네 살 때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당시 조선 거부 40인 안에 들었다고 하니, 하늘이 내린 재산이었다. 간송은 휘문고등학교와 와세다 법대를 졸업했다. 부친의 강권으로 변호사의 길을 걸으면서 동포를 위한 변호를 염두에 뒀는데,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의 삶을 선택했다. 먼저 간송은 민족의 얼을 ‘모았다’. 그림, 글씨, 책, 도자기 등은 한 나라의 정신적 기둥이자 자존심이다. 간송은 혼신의 힘을 다해 민족의 얼을 모으고 또 모았다. 민족의 얼과 혼이 서려있는 작품들은 한두 푼으로 구입할 수 없는 것들이고, 또 돈이 있어도 안목과 열정이 없으면 구입할 수 없다. 더 나아가 분명한 역사의식과 과감한 결단력이 있어야하고, 오랜 인내와 지극한 정성이 있어야 한다. ■ 전재산을 ‘문화재 보호’에 바친 간송 또 간송은 민족의 얼을 ‘지키고’, ‘되찾아왔다’. 당시 적지 않은…
[더,오래] 허유림의 미술로 가즈아(16) 미술 작품을 구매해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부를 일군 화상과 컬렉터들이 있다. 간송 전형필을 시작으로 박생광과 전혁림을 후원한 이영 미술관장 김이환·신영숙 부부, 조선대가의 작품과 한국 현대미술의 조화를 꿈꾸는 목포 유달산 자락의 성옥미술관 등이다. 이들은 미술품 구매와 후원이 돈이 많은 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자신을 찾아가는 일임을 보여준다. 이번 회부터 한국의 화상과 컬렉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일제 때 문화재 지킴이이자 최고의 수집가 일제 강점기에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청년이 있었다. 그는 상속 재산을 동원해 일본으로 반출되던 우리 문화재를 지켜냈다. 문화재 지킴이로 독립운동을 펼친 간송 전형필(1906~1962) 이야기다. 문화재 지킴이로 독립운동을 펼친 간송 전형필(1906~1962).[사진 간송미술관] 간송은 1906년 현재의 동대문 시장에 해당하는 배오개시장의 상권을 장악한 전계훈 증손자이자 전영기의 2남 4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간송은 당시 아들이 없던 숙부 전명기의 양자가 돼 99칸 집에서 친부모, 양부모, 양조부모까지 함께…
간송특별전 포스터[서경덕 교수 제공]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배우 임수정과 방송인 마크 테토가 3·1운동 100년을 맞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 간송미술관에서 3월 말까지 열리는 간송특별展 '대한콜랙숀'에 내레이션을 재능기부했다. 영화 '당신의 부탁', '시간이탈자' 등에서 열연한 임수정과 '비정상회담' 출신 미국인 마크 테토는 각각 한국어와 영어로 전시물을 설명하는 음성서비스를 녹음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 간송 전형필 선생이 많은 국보와 보물을 수집하기까지 긴박했던 이야기들과 보성학교를 인수해 민족교육에 힘쓴 일화들로 꾸며진 이번 전시에 대해 관람객들에게 설명한다. 임수정은 "이번 전시회에 내레이션으로 참여해 기쁘다. 관람객들이 전시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크 테토는 "한국 문화에 심취한 제게 이런 기회가 주어져 영광이다. 많은 외국인이 '대한콜렉숀'을 감상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대한콜렉션'은 13세기의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 18세기의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294호) 등 국보 6점과 보물 6점 등 60여 점을 선보인다. 간송미술관 홍보대사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이번 전시를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임수정의…
3월말까지 DDP서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 개인재산 팔아 한평생 문화재 수집 기와집 10채값으로 지킨 고려청자 200만평 땅팔아 도자기 20점 소장 국보·겸재·추사작품 60여점 전시 겸재 정선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를 그린 ‘고사관폭’ /사진제공=간송미술문화재단 국보 6점과 보물 8점을 포함해 겸재 정선의 그림, 추사 김정희의 글씨 등 60여 점을 전형필의 삶과 더불어 돌아보는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이 오는 3월말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 간송의 ‘문화재 독립운동’은 일본에 머물던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의 소장품인 일명 ‘갇스비콜랙숀’에서 절정을 이룬다. 1937년, 불안한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고 영국으로 떠나는 개스비가 도자기 컬렉션을 정리하려 하자 간송은 한달음에 현해탄을 건넌다. 20점의 도자기를 위해 물려받은 충남 공주의 1만 마지기 땅을 팔았다. 1마지기 면적을 충청도에서는 200평으로 치니 1만 마지기에 해당하는 200만 평은 남산 면적의 두 배, 축구장 925개 크기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과 바꾼 도자기들은…
<앵커> 그런가 하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서슬 퍼런 일제에 맞서 지켜낸 귀한 문화재들이 한자리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홍지영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를 따라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고려청자의 대표 걸작입니다. 1935년, 일본 총독부박물관도 탐을 냈지만 서른도 안 된 청년 간송이 거금 2만 원을 주고 샀습니다. 기와집 20채에 해당하는 가격이었습니다. 하얀 병에 새겨진 나비와 푸른 난초 잎사귀는 뻗어 나올 듯 생생합니다. 이 역시 간송이 1936년 경매시장인 경성구락부에서 일본 거상 야마나카를 물리치고 1만 4천 580원에 사들였습니다. [전인건/간송미술관장 : (경성구락부는) 합법을 가장해서 일본으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의 유출 통로로 사용됐고, 그곳이야말로 간송이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서 싸웠던 최전선이라고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겸재 정선의 21폭 화첩은 친일파 송병준의 머슴이 불쏘시개로 쓰려던 것을 간신히 살려냈습니다. 고려청자 수집가였던 영국인 변호사 개스비로부터 인수한 작품들도 볼거리입니다. 새끼 품은 어미 원숭이를 형상화한…
큰 사진. 문화재 수집으로 ‘문화보국’을 외치던 간송 전형필 선생은 3·1운동에 물심양면으로 참가한 보성중학교를 1940년 인수해 ‘교육보국’에도 나섰다. 일제 강점기 시절 보성중학교 졸업사진 앞에 선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신인섭 기자] 일제의 문화재 수탈에 맞서 만석꾼 재산을 오롯이 우리 문화유산 수집에 바친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의 정신은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더욱 빛난다. 젊었을 적부터 키워온 그의 예리한 안목과 결연한 의지와 두둑한 배짱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조상들이 남긴 예술품의 존재조차 모르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4일 서울 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시작된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3월 31일까지)은 간송의 그런 열정과 그 열정이 만든 결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지난해부터 간송미술관을 맡게 된 간송의 손자 전인건(48) 관장이 기획에 참가한 첫 전시이기도 하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DDP서 ‘삼일운동 100년 특별전’ 재밌는 사연 담긴 국보급 60여 점 이르면 가을부터 성북동 전시 재개 할아버지 문화보국 정신 되살릴 것 간송미술관 소장품전이 성북동 보화각을…
3·1운동 100주년 특별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서 3월까지 간송 전형필은 1906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법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30년부터 한국 미술품 수집을 시작해 1938년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 ‘보화각’(간송미술관 전신)을 세웠다. 1962년 별세했고, 2014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간송미술문화재단 "1만4580원!" 1936년 11월 경성에서 열린 경매장, 미술품 수집가 간송 전형필(1906~1962)과 일본 무역상 야마나카 상회가 맞붙었다. 매물은 조선백자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었다. 당시 경매가 열린 경성미술구락부는 합법적 유물 반출 창구였고, 간송은 이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격을 높였다. 500, 1000, 3000, 9000, 1만…. 조선 도자기가 2000원 넘게 팔린 적 없던 시절이었다. 간송이 "1만4580원"을 응찰했다.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는 이 압도적 경매 최고가 앞에서 결국 일본은 무릎을 꿇었다. 여염집 참기름병으로 쓰이던 이 백자는 훗날 국보 제294호로 지정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간송미술문화재단 특별전 '대한콜랙숀'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3월까지 열린다. 문화 독립운동가로서의 간송이 식민지에서 지켜낸 조국의 예술과 열망을 조명하는 자리다. 남몰래 도쿄까지 가…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 DDP 마지막 전시… 31일까지 열려 간송 전형필이 경매 등을 통해 수집한 유물. 왼쪽부터 청자상감운학문매병(13세기·국보 제68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18세기·국보 제294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12세기·국보 제270호).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일제강점기 우리의 문화재를 지켜냈던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유지를 이어받은 간송미술관이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특별전 ‘대한콜랙숀―대한의 미래를 위한 컬렉션’을 4일 개최한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간송이 일제에 대항해 모으고 지킨 최정상급 문화재를 한데 모았다. 친일파의 불쏘시개가 될 뻔했던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보물 제1949호), 경성미술구락부 경매를 통해 지켜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 등 국보 및 보물 14점을 비롯해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추사 김정희 글씨 등 6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은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뉜다. 첫 번째 공간 ‘알리다’는 무료로 공개하는데, 5년간 DDP에서 열렸던 간송미술관 전시를 갈무리한다. ‘전하다’는 3·1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보성고보를, ‘모으다’는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전신)을 소개한다. 한만호 간송미술문화재단 실장은 “역사적 의미를 보여주는 ‘히스토리 텔링’에 집중해 문화재 실물은 물론 그…
DDP 마지막 간송전 통해 운학문매병 등 최정상급 문화재 전시 '문화재 독립운동가'의 지난한 수장 여정과 교육자 면모에 방점 국보 제294호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36년 11월 22일 경성미술구락부. 지금 명동 프린스호텔에 자리한 구락부는 당시 경성에서 유일하게 고미술 경매를 전담했다. "합법적인 문화재 반출구였던(한만호 간송미술문화재단 실장)" 이곳에 이날 목이 긴 백자병 하나가 등장했다. 한때 참기름병 신세로 전락했다가, 그 가치를 알아본 일본인 수장가들을 거쳐 경매에 나온 것이었다. 500원 호가는 금세 1천 원을 넘어 9천 원에 도달했다. 경매는 일본 거상, 야마나카 상회와 일본인 골동품상인 신보 기조(信保喜三) 경쟁으로 좁혀졌다. 10원까지 올려가며 다툰 끝에 결국 병을 손에 쥔 이는 '1만4천580원'을 부른 신보 기조, 아니 그가 대리한 30세 조선인 사업가였다. 간송 전형필 [대구시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문화재 독립운동가'로 존경받는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역사 속에서 빛난 순간 중 한 장면이다. 이 병은 훗날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라는 이름을 얻고 국보 제294호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