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탄생 110주년 기념으로 ‘올드 앤 뉴…’ 전시회 열려
한국의 미술가 가운데 간송 전형필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의 산천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그리고자 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비롯해 민족적 걸작으로 평가받는 다양한 미술품들이 간송이 아니었으면 접할 수 없었던 우리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33명의 현대 작가들이 일제강점기 ‘민족문화재 수호자’로 불리는 간송을 기리며, 그의 국보급 소장품들을 재해석한 전시회 ‘올드 앤 뉴, 법고창신(OLD & NEW, 法古創新)’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다. 간송 탄생 110주년 기념으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최초로 현대 미술작가들과 협업하는 전시회다.
김기라 작가와 김형규 감독은 사찰의 24시간을 담은 영상 작품 ‘새로운 세계화-사상화(思象畵)’를 내놓았다. 남원 실상사에서 벌어지는 24시간의 일상을 타임랩스 기법으로 담은 작품은 승려들의 소탈한 일상을 통해 조상들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마치 폭포의 거친 물소리가 들릴 듯 생생한 겸재 정선의 ‘박생연’은 이이남 작가의 ‘박연폭포’로 재탄생했다. 동서양의 명화에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해 시각적으로 풍성한 재해석을 하는 이이남의 ‘박연폭포’ 속에서 그림 속 사람들은 폭포를 관망하며 서로의 소감을 묻는다.
청화백자에 전설의 용이 아닌 사이보그 용이 그려진 ‘청화백자사이보구용문대호’는 신이철 작가의 작품이다. 왕을 상징하며 주로 왕실에서 사용된 청화백자의 용 무늬가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해학이 넘치는 용 항아리가 됐다.
전시장에는 겸재가 금강산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담아낸 걸작 ‘풍악내산총람’과 ‘통천문암’도 나와 있다. 현대 작가들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간송의 소장품을 조사했더니 겸재 작품이 압도적으로 꼽혀 그의 작품을 선정한 것이다. 간송의 손자이기도 한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은 “문화를 통해 나라를 지켰던 간송의 정신을 젊은 작가들이 현시대에 어울리는 적합한 문제의식을 통해 재해석했다”며 “33인의 현대 작가가 기리는 우리 고유 문화에 대한 찬가는 현대 미술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외에 김다움, 배정완, 이세현, 코디 최, 이상용, 윤기원, 유승호 등 작가들의 ‘간송 오마주’도 관람할 수 있다. 이진명 수석 큐레이터는 “한국 현대미술이 시작된 지 50~60년,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2000년대 이후 여러 글로벌 담론이 현대 미술에 용해돼 왔지만 우리 미술엔 지울 수 없는 한국적 특색과 정서가 있다”며 “이러한 감수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탐색하는 전시회”라고 밝혔다.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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