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김홍도·신윤복·김득신 등 33명 화가의 명작 80여점 통해
조선 풍속인물화의 변천 한눈에
조선시대의 풍속인물화 걸작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당대의 일상적인 삶과 풍속이 인물들과 어우러진 풍속인물화는 그림을 ‘보는’ 즐거움과 더불어 화면 속에 담긴 그 시대의 이야기를 ‘읽어내는’ 재미가 아주 크다. 여러 주제의 옛 그림들 가운데 대중적으로 관심이 높고 인기가 많은 분야가 풍속인물화이기도 하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개관한 2014년부터 연속으로 마련하고 있는 ‘간송문화전’의 여섯번째 전시회(6부)가 20일 개막된다.
제6부 주제는 ‘풍속인물화-일상, 꿈 그리고 풍류’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80여점의 명품들이 ‘일상’ ‘꿈’ ‘풍류’라는 소주제 아래 전시됐다. ‘일상’에선 농사짓는 농부는 물론 갖가지 일을 하는 여성들, 망중한을 즐기는 문인 등 그야말로 일상 풍경을 담은 작품들이, ‘꿈’에선 팍팍한 현실을 초월한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신선, 고승들을 다룬 작품이 모아졌다. ‘풍류’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기는 인간 본능적 풍류를 담은 작품들이다.
출품작을 시기별로 보면 ‘몽유도원도’로 유명한 조선 초기 화원 안견의 제자인 석경(1440~?)의 작품부터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춘곡 고희동(1886~1965)에 이르기까지 500여년에 걸쳐 있다. 화가 33명의 작품을 통해 조선시대 풍속인물화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이다. 풍속인물화 등 조선시대 그림은 중기까지만 해도 곳곳에서 중국풍이 느껴진다. 그림 속 주인공은 중국 사람인 듯하고, 그가 입은 옷은 중국풍의 옷이며, 산과 강도 조선 땅이 아니라 중국 산천이나 관념 속의 이상향이 대부분이었다. 조선 옷을 입은 조선인이, 조선의 산과 강이, 조선인의 사상과 철학이 작품에 녹아든 것은 이른바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진경시대가 꽃을 피우면서다.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를 장식한 진경문화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 문학 등 문화예술 전 분야에 조선만의 독특하고도 고유한 미감을 뿌리내리게 했다.
그림에서의 진경문화는 겸재 정선(1676~1759)에서 비롯된다. 풍속화도 이전과 달리 조선만의 특성이 묻어나는 진경풍속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겸재의 뒤를 이어 관아재 조영석을 비롯해 단원 김홍도(1745~1806), 긍재 김득신(1754~1822), 혜원 신윤복(1758~?) 등이 풍속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런 고유의 진경문화는 당시 지배적 이념의 변화에 따라 탄생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중국의 주자성리학이 지배적 이념, 철학이었으나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등을 거치며 성리학은 조선의 주체성, 고유성이 가미된 조선성리학으로 발전했고, 조선성리학을 뿌리로 조선 진경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대중적으로 인기 높은 풍속인물화의 상당수가 바로 진경화풍의 작품들이다. 500여년에 걸친 작품들이 나왔지만 관람객의 관심은 아무래도 진경 풍속인물화, 나아가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화가들인 정선이나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이정 등으로 모아진다.
전시장에는 신윤복의 그 유명한 ‘미인도’가 다시 걸렸다. 2014년 여름 간송문화전 2부 때 선보인 지 2년 만이다. 조선시대 여성 초상화로는 극히 드문 ‘미인도’는 풍류세계에 몸담고 있는 기생을 그리되 내밀한 속마음까지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명작이다. 또 단옷날을 즐기는 여인들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낸 ‘단오풍정’ 등 화첩 <혜원전신첩> 속의 작품들도 출품됐다.
김홍도의 ‘마상청앵’(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은 말을 타고 길을 나선 한 선비가 길옆 막 새싹을 틔운 버드나무 가지 위에서 꾀꼬리 한 쌍이 노는 모습을 넋이 나간 것처럼 바라보는 장면을 포착했다. 드넓은 하늘을 여백으로 삼은 대담한 구도도 압권인 작품이다. 김득신의 ‘야묘도추’(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다)는 살구나무 꽃망울이 터지려는 화창한 봄날, 도둑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쳐 달아나자 어미 닭은 물론 마루와 방에 있던 주인 부부가 병아리를 되찾으려 고양이를 쫓으려는 역동적인 그림이다. 부부의 얼굴 표정, 닭과 고양이의 모습 등에서 생동감이 넘친다. 간송미술재단 측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해학과 풍자가 어우러진 푸근한 휴식, 격조 있고 넉넉한 풍류의 멋을 즐기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8월28일까지. 그림 제공 | 간송미술문화재단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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