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부터 화가로서 독특한 경지
가족 행사로 시작한 ‘보화각 전시’
세계적 관심 끄는 미술전으로 발전”
전성우 선생을 떠나보내며
지난 6일 별세한 고 전성우 선생은 화가로서 교육자로서 많은 활약을 하셨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우리나라의 미적 자본을 확충한 업적입니다. 선조들의 유물을 보전하는 것만으로는 문화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유물의 문화적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일도 중요한 국가적 과제입니다. 미국과 중국 등 군사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의 문화 소프트 파워는 나라를 지키는 중요한 길이 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당신의 급작스러운 별세는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1953년 선생이 미국으로 유학 가던 시절은 미국 추상표현주의가 막 세계 화단에 진출하던 때였습니다. 그 시대에 선생의 ‘만다라 시리즈’는 시대를 앞서가는 표현주의 작품으로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첫 한국 전시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 미국 표현주의 작가들과는 다르게 원형의 형태나 자연의 깊은 색채가 불교적 인상을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화가로서 독특한 경지를 개척하셨습니다. 1968년에서 2013년까지 오랜 기간 간송미술관장으로 꾸준히 국보급 문화재를 전시해 오셨습니다. 이미 건축된 지 오래되어 낡아버린 서울 성북동 보화각 미술관 건물에서 외부의 재정 지원 없이 아버님 간송 전형필 선생의 유지를 지키려는 뜻의 조촐한 가족행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100만명이 넘는 동호인에게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독보적인 미술전시가 되었습니다.
이미 의류 패션으로 세계에 잘 알려진 서울 동대문 지역에 2013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건설되었습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이곳의 주전시실에 개막전으로 마련한 한국 고전미술전은 세계 의류 전문가들에게는 충격적인 전시였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서양식 의류에도 혜원 신윤복의 회화에서 보이는 미적 감각이 살아 있습니다. 단순히 고전 미술품의 수집, 보존이 아니라 국가의 미적 자본의 가치 창출입니다. 올해로 5년째 자하 하디드(영국 건축가)의 현대적 건물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간송 전시는 디자인 창조 산업의 발생지에서 한국 문화창조 역사의 뿌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주옥같은 한국 예술작품들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집을 팔아 그것들을 수집한 간송 전형필 선생의 뜻은 그 후손들이 미적 자본의 가치를 높여 우리 독창성의 기반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성우 선생의 작가로서의 미적 역량과 역사를 보는 혜안이 없이는 작은 규모의 보화각 전시가 세계적 관심을 끄는 전시로 발전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 정체성을 지키려는 일을 어찌 선생의 개인적인 관심사로 놓아둘 수가 있습니까? 이제 선생이 가신 후 재단 사업은 가족, 친지들이 유지를 받들어 계속할 것입니다. 선생의 마지막 가시는 발걸음이 가볍도록 사립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범국가적인 문화재단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배순훈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출처 : 한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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